발터와 그루신의 재매개 개념 안에서 해석되는 ‘미디어 침투 공간’으로서 의 비장소는 매체의 안무적 개입을 통해 실현되었다. 매체를 통한 실천적 경험은 공간의 재인식 과정 안에서 겪게 되었는데, 이는 유목적 풍경Nomadic Landscape 작업을 통해 재현되었다. 작품은 비장소에 관한 연구를 위해 비어 있는 장소를 탐험하고 사유를 통한 거주하기를 시도한 작업이다. 사유를 통한 거주는 동일한 장소를 오랜 기간 방문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공간을 점유 하는 것을 뜻한다.
약 3개월 동안 진행했던 본 연구 작업 기간 동안, 본인은 ‘실천된(practiced) 경험’을 통해 그 장소를 실제로 점유해서 살고 있는 것 같은 ‘거주’의 경험을 했다. 이러한 실천이 거주의 경험이 되었다는 사실은 본인의 작업이 진행되는 공간에 낯선 사람이 등장했을 때 더욱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불현듯 등장했던 타자는 본인의 사적 공간에 대한 침입자로 인식되었고 불편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즉 이 창작 연구를 통해 본인은 비어있는 장소의 새로운 거주자가 된 셈이었다.
‘실천된 경험’, 즉 장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거주를 하는 방식과 동일 하게 공간을 경험하고 그 특성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빈 건물 안을 돌아다니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물 이곳저곳을 만졌다. 그렇게 장소와 맺게 된 관계는 기존 건축적 공간이 구조화했던 동선의 통제와 조절을 벗어 나 공간 내부를 전혀 다른 공간으로 경험하도록 해주었다.
예를들어, 유목적 풍경 시리즈에서는 전혀 다른 두 장소(페낭과 광주)가 등장하는데 이 두 장소가 어느 시점(이미지)에서는 겹쳐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비어있는 공간과 닮은 이 두 비장소의 이미지를 실제 공간에 물리적으로 겹쳐보기로 결정하면서 본인은 비어있는 곳으로부터 길어 올려지는 개인적 기억이나 느낌에 따라 또 다른 장소성을 그 공간에 덧입혔다. 장소성을 덧입힌다는 의미는 창문을 매개삼아 커다란 창에 실사 프린트된 다른 장소 이미지를 붙여 넣음으로써 한 공간에 다른 공간 이미지를 겹쳐놓는 재매개 행위였다. 그렇게 비어있는 공간에 다른 시공간이 담긴 이미지가 겹쳐짐으로 써 두 시공간은 공명하게 되었다. 두 시공간의 상징적인 의미가 공명하도록 하는 본인의 행위가 곧 매체의 안무적 개입이었다.
그 과정에서 건축적 공간이 지니고 있던 내부와 외부라는 이분법적 구조 는 매체적 연속성을 지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즉 강렬한 외부의 빛은 커다란 창을 통해 내부로 투사되고 죽은 공간과도 같던 내부는 프린트된 풍경을 투과한 채광으로 가득해졌다. 그 순간, 창은 영사막이 되면서 마치 사진이라 는 현대적 매체를 통해 채플의 스테인 글라스가 주는 전통적 아우라의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사진은 자연 채광에 의해 자연스럽게 영화적 릴 타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가 됨으로써 경험의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시켰다. 요컨대 본인의 실험은 사진과 영화의 광학적 감각을 통해 비물 질적인 대상을 물질적인 막(layers)으로 감각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본 실험을 통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여 아무런 기능을 갖지 않는 비어있던 장소는 본인의 거주하기 방식의 접근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되었다. 즉 장소를 하나의 경험된 공간으로 인식하려 했던 실험은 매체의 안무적 개입을 통해 ‘실천된 장소’가 되었다. 또한 매체를 통해 실현된 ‘실천된 장소성’은 비장소와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했고, 동 시에 내주의 실험을 통해 예술적 중간지대의 장소성도 경험할 수 있었다.